종이비행기 날리기 국가대표 이정욱씨에게 듣는 잘 날리기 비법…
오스트리아에서 월드챔피언 대회도 열려
“오늘도 난 접어 날려보내/ 이 작은 종이비행기를/ 누군가 이걸 보겠지/ 잡아주겠지 하는 기댈 갖고.” 모던록 밴드 델리스파이스의 2집 <델리의 집으로 오세요>(1999) 수록곡 ‘종이비행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기대는 늘 실망으로 바뀐다. “오~ 그냥 지나쳐버릴 뿐인걸.” 깊은 절망에 고개를 떨굴 즈음, 반전이 찾아온다. “어느 날 우연히 창밖을 보았어/ 하늘에 무수히 날려진 종이비행기를/ 그래 너희 역시 접고 있었던 거야.” 지금이다. 손에 쥔 종이비행기를 날려야 하는 순간이다.
델리스파이스가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공연장은 비상하는 종이비행기로 뒤덮인다. 팬들이 미리 약속한 이벤트다. 기자도 공연장에서 종이비행기깨나 날렸다. 마음 같아선 무대까지 날려보내고 싶었으나, 비행기는 번번이 얼마 못 가 곤두박질치곤 했다. 종이비행기를 잘 날리는 비법은 없을까?
여기 종이비행기에 푹 빠진 사람들이 있다. 자신만의 비행기를 만들어 더 높이 더 멀리 더 오래 날려보내고자 갖은 열정을 쏟아붓는다. 이정욱(28)씨는 지난달 11일 종이비행기 날리기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해 ‘오래 날리기’ 종목에서 우승했다. 오는 8~9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리는 ‘레드불 페이퍼 윙스 월드 파이널’ 출전 자격을 얻었다. 에너지 음료회사 레드불 주최로 3년마다 열리는 대회다. 4회째를 맞은 올해 대회에는 71개 나라 선수들이 참가한다. ‘멀리 날리기’ 종목에는 김영준씨, ‘곡예비행’ 종목에는 이승훈씨가 출전한다. 모두 대학생이다.
이정욱씨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4.19초를 기록했다. 2012년 월드 파이널 최고 기록이 10.68초였음을 고려하면, 우승권에 근접해 있다는 평가다. 이씨의 자체 최고 기록은 18초다. 그는 종이비행기에 세계 챔피언의 꿈을 실어 날린다. 인터넷도 케이블방송도 안 들어오던 경북 상주시 함창읍 산골마을에서 빚어낸 꿈이다. 중2 때 텔레비전에서 당시 종이비행기 오래 날리기 기네스 기록 보유자 켄 블랙번을 다룬 방송을 보고 생각했다. ‘저렇게 작은 걸로도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구나.’ 놀거리가 변변찮은 산골마을에서 공책을 찢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며 놀았다. 중고등학교 항공부에서 비행기 역학을 공부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A4용지 하나에 비행역학 담고
어깨 힘 기르는 특수훈련도
접는 법 약간만 개선해도
비행의 즐거움 높일 수 있어
종이비행기 강국은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에선 1960년대부터 종이비행기 대회가 열렸다. 멀리 날리기 기네스 기록도 미국인 2명이 2012년 세운 69.1m다. 지역 방송사 프로듀서 존 콜린스가 3~4년의 연구 끝에 종이비행기를 개발했고, 자신의 어깨 힘이 모자란 걸 극복하기 위해 미식축구 쿼터백 선수 출신 조 에이옵과 팀을 이뤄 도전했다. 부인 이름을 따서 ‘수잰’(Suzanne)이라 이름 붙인 종이비행기 접는 법은 유튜브에 공개돼 있다. 일본에선 1980년대부터 일본종이비행기협회 주최로 재팬컵 종이비행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도다 다쿠오 협회장은 오래 날리기 기네스 기록(29.2초) 보유자다. 일본 종이접기(오리가미) 전통이 종이비행기로도 이어진 셈이다.
국내에선 한국종이비행기협회가 2009년 창립됐다. ‘종이비행기 박사’라는 별명을 가진 이희우 충남대 종합군수체계연구소장이 줄곧 협회장을 맡아왔다. 공군 파일럿 출신의 예비역 장성인 그는 지난 30여년 동안 종이비행기에 매달려왔다. 1995년 날개에 승강타를 달아 곡예비행이 가능한 조립형 종이비행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페이퍼 파일럿>이라는 종이비행기 책을 국내에서 처음 냈다. 협회는 2009~2013년 코리아컵 종이비행기 대회를 5회까지 열었다. 2014년 6회 대회는 예산 문제로 무산됐다. 오는 6월6일 경남 진주에서 제1회 무림페이퍼 종이비행기 대회를 연다. 이희우 협회장은 “코리아컵 대회를 통해 국내에도 종이비행기 동호인들이 많이 생겼다. 돈이 안 들어 누구나 할 수 있고, 비행기의 과학적 원리도 익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욱씨도 2013년 코리아컵 대회 오래 날리기 종목 우승을 하면서 본격적인 길로 들어섰다.
종이비행기는 크게 접기형과 조립형으로 나뉜다. 접기형은 A4지 등 규격 종이를 접어 만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만드는 ‘배꼽 비행기’를 비롯해 여러 접는 방식이 있다. 조립형은 종이 부품을 오리고 붙여 실제 비행기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이희우 협회장이 개발한 조립형 비행기 여러 종류가 시판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페이퍼 파일럿’을 검색하면 쇼핑몰에서 몇천원이면 살 수 있다.
레드불 페이퍼 윙스는 접기형만 참여하는 대회다. 오래 날리기, 멀리 날리기 종목은 대회장에서 나눠주는 공식 A4지로 그 자리에서 접어 날려야 한다. 찢거나 자르거나 붙이는 방법은 허용되지 않는다. ‘오래 날리기’용 비행기는 체공 시간을 늘리기 위해 넓적한 형태로 만드는 게 보통이다. 이정욱씨가 개발한 ‘버드맨’은 옆으로 퍼진 직사각형 모양이다.(사진이나 접는 법은 기밀이라며 공개를 꺼렸다. 세계 챔피언이 되면 공개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를 거의 수직에 가까운 80도 각도로 15~20m까지 솟구치게 던진 뒤 큰 원을 그리며 내려오게 한다. 웅크리고 앉았다 일어서며 던져 올리는데, 상승 순간 속도가 시속 100㎞까지 이른다고 한다. 이정욱씨는 어깨 힘을 기르기 위해 투수처럼 고무줄을 걸고 잡아당기는 훈련을 한다. ‘멀리 날리기’용 비행기는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통 창처럼 뾰족한 형태를 띤다. 창던지기와 비슷한 자세로 45도 각도로 던지는 게 보통이다.
일반인이 종이비행기를 잘 날리는 비법을 물었다. 이정욱씨는 존 콜린스가 개발한 ‘수잰’을 살짝 변형한 비행기를 추천했다. (동영상 참조)원래는 테이프로 열린 틈을 다 막아줘야 하지만, 일상에서 쉽게 만들 수 있도록 ‘배꼽’을 접어 올려 고정하는 방식으로 변형했다. 양 날개를 수평에서 각각 30도씩 위를 향하게 해 상반각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난다. 레이저프린터로 한번 열을 받은 종이는 힘이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A4지로 접는 것이 좋다. 접은 모서리는 플라스틱 카드로 꾹꾹 눌러주란다. 이렇게 완성한 비행기를 30도 각도로 세게 민다는 느낌으로 던지면 된다.
시킨 대로 날려봤다. 떠오르던 비행기가 땅으로 내려오다 어느 순간 다시 솟아오른다. 짜릿하다. 이처럼 비행기 코가 다시 떠오르는 걸 ‘피칭’이라 하는데, 날개 뒷부분을 살짝 말아올리면 더 잘 이뤄진다고 한다. 다음에 델리스파이스 공연에 가면 이 비행기를 접어 날려야겠다. 혹시 아나? 무대까지 날아간 내 비행기를 그들이 받아줄지.
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