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들해에 접한 남극 드로닝모드랜드의 아트카만에 서식하는 황제펭귄 무리의 모습. 온몸이 모두 회색인 펭귄들은 아직 덜 자란 개체들이다. 하네스 그로베, 크리에이티브 코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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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환경] 기후변화 폐해 확산
점점 작아지는 바다얼음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북극곰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후변화의 위협을 상징하는 대표적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반대편의 남극 생태계에 가해지는 기후변화의 위협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갈수록 가속화하는 온난화의 위협 앞에 남극 생태계만 예외일 수는 없다. 최근 북극의 북극곰에 해당하는 남극의 황제펭귄이 머지않아 북극곰과 비슷한 처지에 놓일 것임을 경고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귀 주위에서 짙게 시작돼 목과 가슴까지 엷게 물들인 황금빛 깃털과 평균 키 1.2m·몸무게 35㎏의 당당한 몸체가 특징인 황제펭귄은 다큐멘터리나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자주 소개돼 남극 펭귄 가운데서도 대중한테 가장 친숙한 종이다. 지금까지 위성 관측 결과 황제펭귄은 남극 주변 45곳에서 60만 마리가량이 집단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세계적 해양연구소인 우즈홀해양학연구소의 스테파니 즈누브리에 박사가 이끈 국제 연구팀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2100년까지 세계의 45개 황제펭귄 집단에서 모두 개체수가 줄어들고, 이들 집단 가운데 3분의 2가량에서는 현재 개체수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고 최근 학계에 보고했다. 지난달 말 기후변화 관련 저명 학술저널인 <네이처 클라이밑 체인지>에 실은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세계 황제펭귄의 개체수가 향후 30년 동안 10%가량 증가한 뒤 줄어들기 시작해, 이번 세기 말까지 현재 수준에서 최소 19% 감소하리라고 예측했다. 60만 마리에 이르는 황제펭귄 개체수가 2100년이 되면 48만여 마리로 줄어든다는 의미다.
남극 주변 45곳서 60만마리 서식
바다얼음 감소와 급격한 변화로
세기말까지 개체수 19% 감소 전망
연구자들 “멸종위기종 지정해야”
펭귄 가운데서도 가장 추운 곳에 서식하는 황제펭귄 집단은 대부분 인간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워 직접 관찰이 쉽지 않다. 과학자들이 지속적으로 관찰해온 황제펭귄은 남극대륙 동남쪽 아델리에 랜드에 서식하는 집단이 유일하다. 연구진들은 이 황제펭귄 집단을 대상으로, 과거 50여년간의 관찰 자료와 45개 집단 서식지에 대한 위성 관측 자료,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기후모델 등을 이용한 남극 바다얼음의 변화 전망 등을 바탕으로 이런 분석 결과를 얻어냈다.
황제펭귄 집단의 성장은 그들이 번식하고 새끼를 낳아 키우는 바다얼음의 상태에 크게 좌우된다. 각각의 집단이 오랫동안 적응해온 균형 잡힌 바다얼음 상태가 어떤 방향으로든 급격히 변화하는 것은 집단 유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바다를 덮고 있는 얼음의 감소는 황제펭귄의 서식지 자체를 축소시킬 뿐 아니라 남극 먹이사슬의 기초인 크릴의 서식 조건을 악화시켜 황제펭귄의 먹잇감을 줄어들게 만든다.
바다얼음의 증가도 황제펭귄한테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실제 남극의 바다얼음은 지구 온난화에 따라 장기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리라 예상되지만, 단기적으로는 지역에 따라 증가하기도 한다. 바다를 덮고 있는 얼음이 늘어나면 부모 펭귄은 먹이를 구할 수 있는 바다까지 더 먼거리를 뒤뚱거리며 오가야해 추위와 바람에 더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는 성체의 생존률과 새끼한테 먹이를 공급하는 빈도를 떨어뜨려 양육 성공률을 낮추는 쪽으로 작용하게 된다.
연구진이 기후변화 모델을 적용해보니, 황제펭귄 서식지 가운데 남극의 동부 웨델해에서부터 서부 인도양 사이에 위치한 황제펭귄 서식지에서 특히 바다얼음이 많이 줄어들고 변동성도 클 것으로 나타났다. 켐프 랜드에서 아델리에 랜드 사이의 북쪽에 있는 황제펭귄 집단은 규모가 50%까지 줄어드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고, 남위 70도선에서 적도 방향 쪽 서식지에 근거를 둔 집단은 2100년까지 90% 이상 줄어들 수도 있으리라고 예측됐다.
황제펭귄 서식지 가운데 바다얼음의 변화가 가장 적을 것으로 예측된 곳은 로스해 주변의 서식지다. 뉴질랜드 아래쪽에서 남극 대륙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로스해는 지구의 마지막 원시바다로 불릴만큼 남극해 가운데서도 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세계 황제펭귄의 26% 이상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 다른 황제펭귄 집단과 달리 로스해 주변에 서식하는 황제펭귄 집단의 개체수는 2100년까지 오히려 증가하며 다른 서식지에서의 개체수 감소를 상당 부분 상쇄해 줄 것이란 것이 연구자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로스해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이 연구를 이끈 스테파니 즈누브리에 박사는 우즈홀 해양학연구소가 배포한 연구 결과 설명 자료에서 “바다얼음이 아이피시시의 기후모델에서 전망된 것과 같은 비율로 감소한다면 로스해에 있는 가장 남쪽의 서식지들도 21세기 말에는 황제펭귄들의 대피소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런 예측을 바탕으로 황제펭귄을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지만, 황제펭귄이 멸종위기종 지위에 오르는 데는 난점이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은 어떤 생물종이 3세대 안에 30% 감소하리라 예상될 때부터 멸종위기 취약종으로 분류하는 탓이다. 세계 황제펭귄의 개체수는 장기적(2100년)으로 볼 땐 19% 감소하지만, 앞으로 30여년 동안은 다소 증가할 전망이다. 황제펭귄의 1세대가 대략 16년이므로 3세대 안인 2061년까지 황제펭귄 개체수가 적색목록의 멸종위기종 기준에 들어가기는 불가능한 셈이다.
연구자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적인 응답은 복잡하기 때문에, 멸종위기종 보전을 위한 개체수 기준은 황제펭귄 집단에서 예측된 것과 같은 장기적 감소 추세에 선행하는 일시적인 증가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황제펭귄을 미래 기후변화에 의해 위협받는 종의 상징적 사례로 삼아 멸종위기종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출처 :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648058.html